오온 시리즈 이상일
등록자:        등록일:2009-12-01        조회수:8971

새벽 3시, 오온의 시간에 카메라를 들다!


 


우리 나이로 54살. 그래도 이상일은 멋쟁이 사진가다. 겉모습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컬러풀한 젊은 옷차림에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몸매, 적당히 기른 수염과 선한 눈매는 당장 눈앞의 누구라도 끌어들일 듯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외양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거운 흑백톤과 간혹 보이는 떨림은 그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에 투입된 진압군으로서, 철들어 모시려할 때 저세상으로 떠나버리신 어머니를 향해 통곡하는 아들로서, 그는 속죄하듯 광주 망월동 묘역과 어머니를 찍었다. 이런 마음에서 줄곧 세상과 사람 앞에 제 몸을 다 던져 사진을 찍어온 이가 이상일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어머니의 육신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다. 결국 떠난 어머니의 시신이 땅에 묻히던 날에는 태양마저 눈물을 흘리듯 희뿌연 사진으로 남았다.


밤에 몰래 찾은 망월동 묘역에서도 망자와 한참을 마주한 후 이상일이 할 수 있는 일은 카메라를 다시 꺼내드는 것이었다. 영정 속 망자의 사진은 항쟁이 있은 지 13년째에 광주에서 전시되었다.


사진의 미세한 떨림을 제외하면 이상일의 사진은 광주라는 역사성과 인간의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자전적이지만 보편성의 획득. ‘사진가와 대상의 존재감이 서로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 사진’이라는 그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그의 다른 사진인 고난을 견디어온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촬영한 어머니 시리즈와 온산공단의 환경파괴를 다룬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그는 부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범어사에서 새벽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시리즈를 찍는 중이다. 불교의 철학 중 하나인 ‘오온’(五蘊) 시리즈가 제목이다. 다소 개념적이지만 사진행위에 던지는 원론적인 질문이며, 인간의 인식작용에 대한 탐구라고 설명한다. 오온 시리즈는 그가 오랜만에 시작하는 개인작업이다. 사진가에서 한동안 사진교육자의 길을 걷다 다시 사진가로 돌아와 시작한 작업이라 한창 방황 중이라고 한다.     


방황하던 그에게 뜻밖의 수상소식이 날아들었다. 8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이다.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며 담담한 반응이다. 이상일은 8월14일부터 10월31일까지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이상일은 중앙대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대학원 예술학 박사를 수료했다. 1987년 사진학과 후배들의 상반신을 촬영한 첫 개인전 <인간탐구>(대구 현대미술관)를 시작으로 1993년 <어머니 그 이름>(서진갤러리), 1993년 <망월동>(대구 동아미술관, 광주 금호문화재단) 등 모두 13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지금은 부산의 영광문화예술원의 아트디렉터로 있으며 범어사에서 사진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에서 다시 전업작가로 돌아왔다. 사진작업에 전념하려는 이유에서인가? ▷ 사진을 시작하면서 사진 찍는 일이 내 삶의 우선순위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이 일이 사진 찍는 일보다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사진교육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다가 막상 가르쳐보니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다. 그래서 더욱 가르치는 일에 집착했던 것 같다. 내 욕심이자 일방적인 선입견일 수 있다고 자성할 무렵, 전임교수로 있던 경일대에서 재임용이 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작업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안다’의 착각, 사진행위의 본질 찾는 오온 시리즈




부산 범어사에서의 새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작업인지 설명 부탁한다. ▷ 학교를 그만두고 잠시 범어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생활 자체가 전혀 다른 스님들과의 동거가 원만할 리가 있었겠는가. 카메라를 들고 사찰 구석구석을 관찰하게 되었고, 틈틈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때는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라 학교와 사찰생활의 이중성에서 오는 충돌이 심했다. 혼란도 가중됐고. 그래서 스님의 생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원효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습과정을 통해 시작된 작업이 ‘오온’(五蘊) 시리즈다. 흔히 우리가 사물을 ‘안다’라고 확신하는 것을 불교에선 단지 ‘안다’고 착각할 뿐이라고 하며, 다섯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사물의 형태만 보는 색(色), 형태가 의식 중에 표상으로 형성되는 수(受) 그리고 상(想), 행(行), 식(識) 단계로 이어진다. 오온의 과정이 사진을 찍는 행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 시리즈는 사진행위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이며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의 인식작용에 대한 원론적인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오온이 나타나는 시간, 즉 사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새벽 3시에 모두 찍은 사진들이다.


지난 87년 첫 전시 이후 대략 20년 정도가 지났다. 오온 시리즈가 개인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 사진을 찍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살아온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우연히 가르치게 된 일은 정리가 되었지만 사진을 찍는 일은 오히려 새롭게 시작하는 입장인 것 같다. 20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가르치면서 사진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은 늘 미궁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처음 사진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긴 호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사진이 여러 층위의 겹으로 쌓여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줄곧 나를 괴롭혀 왔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카메라를 들 수 있게 된 것 같다.



오온 시리즈




자전적인 이야기 어머니, 망월동 사진작업




이전의 한 특강에서 “소재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지만 사진의 주제는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전형성에서 벗어나 대상의 존재감이 스스로 드러날 때 촬영한다”라고 했는데, 어머니나 망월동 작업처럼 오온 시리즈도 과거의 어떤 기억과 시간에서 출발한 작업인가? ▷ 사진이란 작가의 생활세계가 외부의 질료로부터 형상으로 묻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가지는 내면의 외현이 사진행위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진가가 바라보는 질료 속에 포함되어 있는 형상이 사진가의 기억이나 상상력으로 구체화되는 것, 즉 사진가와 대상의 존재감이 서로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범어사 작업도 같은 맥락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행위나 인식행위는 작가의 생활세계 속에서 축적된 앎의 과정에 대한 소산물이며 더불어 한 작가의 앎이나 구상력의 자기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 사진은 100% 플래시를 사용한다”고도 했는데, 그 이유와 아직까지 필름을 고수하는 이유는? ▷ 우리가 본다는 것은 빛을 통해서다. 그럼 ‘본다’는 행위의 본질이 빛으로부터 시작인지 아니면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부터 시작인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존재는 부재하는 것인가 라는 논의는 이제 의미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내 사진은 보는 주체로서의 입장이 아니라 알아차림의 주체가 없고, 알아차림과 알아차림의 현상만 있을 뿐임을 경험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플래시를 이용해 일방적이고 고착된 인식과정의 빛을 비틀어놓는 방법론을 즐겨 사용한다. 필름은 고수한다기보다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까지 디지털 매체는 수용할 절실함과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리고 성격 자체가 최대한 많은 감각을 사용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카메라에 필름을 교환할 때나 암실에서 약품을 용해하고 확대기를 만지는 작업환경에서 오는 감각의 경험들이 좋다.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보다 필름현상에서 프린트를 마무리할 때까지의 과정이 훨씬 즐겁고 재밌기 때문에 여전히 필름을 쓰고 있다.




휴식기 마치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집과 작업실은 대구에, 사진작업과 갤러리 아트디렉터 등 사진활동은 부산에서 주로 한다. 어떻게 부산과 인연을 맺었는가? 또 대구 작업실 이름이 오픈 윈도우다. 의미는? ▷ 대부분 부산에서 생활한다. 어느정도 촬영 양이 모이면 대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암실작업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대구에서 제자들과 진행하는 스터디가 있다. 부산은 처음 범어사 스님을 통해 영광도서 관계자분의 자녀에게 사진을 가르치면서 가까워졌다. 그뒤 자연스럽게 영광도서갤러리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지금은 영광도서의 사진아카데미 출신들을 돕는 영광문화예술원의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의 작업실은 한 선배의 도움으로 대구 팔공산 자락에 마련한 곳이다. 당시 대구예술대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가르칠 때였는데, 제자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박2일을 합숙하면서 치열하게 사진 스터디를 가졌다. 그때 스터디 모임의 이름이 ‘오픈 윈도우’(Open Window)였다. 어떠한 필터도 거치지 않고 열린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뜻에서 작업실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에 관해 한마디 부탁한다. ▷ 이제는 사진 찍는 일이 인생의 전부인 듯싶다. 거창한 프로젝트보다 느리고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해 숨가쁘게 달려왔고 학교에서 오랫동안 휴식기간을 가졌다. 서두르기보다 긴 호흡으로 좀더 깊게 세상을 관찰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관심을 놓지 않고 성찰하면서 살고 싶다. / 글 이종화기자<월간사진 2009년 4월호>




망월동 시리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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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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