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전문사진가 송기엽
등록자:        등록일:2009-12-01        조회수:7880

꽃 찾아나선 길은 늘 신명난다!



“꽃과 대화를 나눕니다. 꽃대를 흔드는 바람에 맞춰 내 몸도 리듬을 타면서 꽃에게 속삭입니다. ‘너 참 예쁘구나’라고요.”
야생화 전문 사진가 송기엽(59)은 대형 카메라로 꽃사진을 찍으면서 삼각대 없이 손에 들고 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의 작은 움직임까지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핀이 나가 보이는 것 역시 살아있는 야생화의 동감을 더욱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꽃의 떨림 뿐 아니라 향기며, 주위의 새소리와 물소리까지 전해질 수 있는 사실적인 느낌의 사진을 찍으려 노력해 왔어요. 이런 사진에서만이 살아있는 꽃을 볼 수 있어요.” 조리개를 개방해 가운데 꽃을 뺀 주위를 흐리게 해 꽃의 입체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 것도 그만의 노하우 중 하나다.
“우연히 기회가 돼 야생화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 찍을수록 매력에 빠져 들어 언제부턴가 꽃사진만 찍게 됐어요. 꽃의 아름다움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야생화는 볼거리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먹거리가 되고, 아플 때는 약재로도 쓰입니다. 그리고 야생화의 강인함은 인간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동백(울릉도)



춘란(해남)



금낭화(경기도)



이질풀(보길도)


 


백두산만 17회 등정, 전국토 야생화 탐사   
송기엽은 82년 서울 명동의 유네스코 회관에서 자연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를 본 출판사 관계자의 권유로 야생화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다 90년 모 신문사가 주최한 한국야생화대탐사단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탐사단의 단장이었던 야생화연구소의 김태정 박사와 함께 한라산에서 시작해 전국을 지그재그로 훑으며 야생화를 찾아 나선 당시를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생명력과 종족보존을 위한 집념 그리고 어느 꽃보다 강렬한 야생화만의 색과 향기에 이끌려 매료돼 버렸어요. 그 뒤로 꽃과 교감을 나눌 때만이 제대로 된 꽃사진이 나온다는 것을 터득하게 됐죠.”
휴전선을 넘어 북측 땅과 백두산까지 가기로 돼 있던 탐사계획이 바뀌어 휴전선에서 탐사를 중단해야 했지만, 송기엽에겐 새로운 전기가 되어주었다. 그뒤 한반도 식물의 보고로 불리는 백두산만 열일곱번을 오르내리고, 전국의 섬과 산, 늪지 어디라도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다녔다.
“식물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한반도에는 초본만 2,500~3,500여종이 있다고 합니다. 백두산은 그중 절반 정도가 살고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식물의 보고이며, 군락으로 피어있는 경우가 많아 특히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고산지대여서 꽃의 색깔이 강렬하고, 여름에는 고도에 따라 산의 아래쪽부터 올라가면서 여름과 봄, 가을 삼계절의 꽃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백두산에는 조금 이르게 피는 애기괭이눈과 만병초, 좀참꽃과 함께 산 아래로 가면 털복주머니난초와 풍선난초 등이, 천지 주변에는 구름국화 군락이 놓칠 수 없는 장관이다. 한반도 초본의 1/3이 자라는 한라산과 제주도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식물과 꽃 50여종이 있다. 향이 유명한 한란과 백록담 주변의 털진달래 군락이 유명하다. 지리산 노고단의 원추리 군락과 제석단의 고목과 조화를 이룬 철쭉 군락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거제도의 타래난초, 해남의 매화, 백도의 솜양지꽃, 울릉도의 해국, 태안반도의 산국 등 헤아릴 수 없는 야생화가 그의 카메라를 통해 자태를 뽐내었다.         


꽃의 아름다움과 강인함, 자연의 소중함 알려
이렇게 찍은 사진은 그동안 11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책에는 장소와 피는 시기에 따라 야생화를 나누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꽃의 생태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 또 꽃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이나 꽃 주위의 곤충 얘기를 통해 야생화를 더욱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지난해 나온 ‘야생화’(진선출판사 펴냄) 서문에서 송기엽은 “꽃을 찾아나서는 마음이 늘 신명나는 것은 내 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라며 “한 송이 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들에 책이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라는 소박한 소망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대로 그의 사진을 통해 생각 보다 다양한 우리 야생화와 그 아름다움에 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래서 산과 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야생화를 찾아나서는 여행은 웬만한 등반가 못지않은 체력과 지구력을 요구한다. 추운 겨울에는 촬영장비 외에도 방한장비로 짐이 더 불어나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날씨 때문에 자칫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어느 산이든 만만히 봐선 안돼요. 한번은 겨울 한라산을 오르다, 날이 갑자기 컴컴해져 길을 잃었는데, 배낭 속에 들어가 체온을 유지하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긴 적도 있습니다. 백두산은 맑은 날씨였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몰아치는 지역이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라야 합니다.”


사진 60여만장 보유, 부지런한 사진가
꽃사진을 찍기 전 송기엽의 사진은 야생화의 종만큼이나 다양하다. 지금은 작고한 원로 사진가인 박석규가 그의 매형이다. “중학생 때였는데,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요. 매형의 아버님 되시는 분이 임종하기 직전이었고, 그 옆에서 조카가 울먹이고 있는데 매형이 카메라를 들고 와 그 장면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이해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기록자로서 대단한 정신을 소유한 분이었다는 걸 제가 사진을 하다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선택한 것도 이 분 영향이 가장 큽니다.”
송기엽은 어렸을 때부터 박석규와 친분이 있는 유명 사진가들의 작업을 직접 보면서 사진가의 꿈을 키웠다. 군대를 제대한 후인 62년 국도신문의 사진기자로 첫발을 내딛은 후 68년에는 당시 공보부가 주최한 신인예술상을 받으며 사진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서울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의 공식 기록 사진가로도 활동하며, 그의 작업은 스포츠, 인물, 풍경 등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다. 갖고 있는 사진 라이브러리만 60여만장에 달해 그에게 가면 못 구하는 사진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는 많이 찍는 것 이상 좋은 사진을 얻는 지름길이 없다며 풍경사진가들에겐 여기에 부지런함이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 떠 있는 시간이 길수록 남이 못 보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송기엽은 오랫동안 일해 왔던 충무로 사진연구소를 정리하고, 돈암동 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작업실 한켠엔 크고 작은 배낭 두개가 놓여있다. 비교적 가까운 곳일 때는 작은 배낭을, 먼 길을 떠날 때는 큰 배낭을 짊어지고 나선다. 오늘도 배낭은 부지런히 새벽같이 일어날 주인의 외출을 기다리고 있다.     
글 | 이종화기자(월간사진 2005년 3월호)



자료제공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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