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사와 삶 복원하고 규명하는 눈빛아카이브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3-08-28        조회수:8302

 

사진이 말하는 역사의 진실…곧 13권째 출간

눈빛아카이브


1944년 남태평양 마샬 군도, 겁에 질린 반라의 포로들이 의기양양한 미군에 둘러싸여 있다. 캡션을 보지 않았더라면 일본군 포로쯤으로 여겼을 사진 속 이들은 사실은 한국인 징용자들이다. 식민지 청년이 아니었다면 고향에서 순박하게 농사짓고 살았을 이들이 전혀 생소한 마샬 군도라는 곳에 끌려와 미군의 포로가 된 것이다.  

1904년의 서울 용산의 나루터, 외국인 선교사가 촬영한 사진에서 당시 시대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아래로 나룻배를 건조하던 장소가 보이고, 목판에 엿을 파는 소년과 줄무늬 셔츠를 입은 소년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장사에 나선 소년이나 줄무늬 셔츠는 개화기의 변화상을 나타낸다. 일본군과 청나라군이 번갈아 주둔한 식민지 침탈의 기지였던 용산의 과거 지형도 살펴볼 수 있다.(월간사진 2013년7월호)





신동삼 컬랙션, 함흥장터, 1955-1957



방대한 사진 수집, 분류한 사진역사서

사진은 그것이 담고 있는 현상은 물론 그 이면의 읽기를 통해 역사의 진실로 안내한다.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이나 국내 우익사이트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는 역사를 소홀히 한 과거가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현재로 돌아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의 기억을 복원하고 각인하는데 사진만큼 중요한 매체도 없다. 과거의 희미하거나 진위마저 의심되는 기억이라도 이미지만은 뚜렷이 남아있곤 한다. 또한 필설로 다 설명 못하는 것을 사진을 보며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등 사진은 언어 이상의 호소력과 파괴력을 가진다. 이처럼 사진과 역사의 기억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동안 전시나 논문의 단골 주제가 되곤 했다. 특히 사진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기록물을 채집해 역사적 사건이나 특정 시기를 규명하는 아카이브북이 출판되어 관심을 끈다. 바로 사진전문출판사인 눈빛이 2010년부터 펴내고 있는 ‘눈빛아카이브’ 시리즈다.

지금까지 10권이 출판된 눈빛아카이브는 매권마다 적게는 400장에서 많게는 1,000장이 넘는 사진을 수록하고, 사진 속 사건이나 시대의 이해를 돕고 의미를 부여하는 글을 함께 실었다. 여기에 필요하면 연표나 도표, 과거의 기록문서 등이 함께 실려 사진으로 보는 역사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출판된 아카이브북은 ‘한국전쟁 1’(2010년) ‘한국전쟁 2’(2011년), ‘일제강점기 1910-1945’(2010년), ‘꿈의 공장’(사진 김한용, 2011년), ‘북아메리칸 인디언’(사진 에드워드 커티스, 2011년), ‘골목안 풍경 전집’(사진 김기찬, 2011년), ‘한국의 장터’(사진 정영신, 2012년), ‘개화기와 대한제국’(2012년), ‘휴먼 선집’(사진 최민식, 2012년),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사진 김지연, 2013년) 등이 있다.



전대식 사진, 사천강 돌아오지 않는 다리, 녹슨 군사분계선 표지판

역사적 시기와 사건, 시대성 규명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대표는 “사진만큼 한국인들이 살아온 흔적, 기억을 잘 보여주는 매체는 없다. 아카이브북은 사진을 통해 우리의 지나온 삶을 규명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져 역사적 사건의 궤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듯 사진으로 지난 역사의 산 현장을 대면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1?2’는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안된 1951년과 1954년에 미국 해외참전용사협회가 발간한 책과 연합군이 UN에 보낸 보고서 등을 편집한 1권과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을 네 차례 방문해 발굴한 1,500여점의 한국전쟁 사진들을 선별한 2권으로 구성된다. 두권의 한국전쟁 아카이브북은 긴박한 전투 상황은 물론 전시의 일상까지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시각에서 전쟁의 고통과 참혹함에 초점을 맞추는 등 한국전쟁의 기억을 균형감 있게 망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35년과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1910년 한일합병까지 개화기를 다룬 ‘일제강점기 1910-1945’와 ‘개화기와 대한제국’은 산발적으로 소개되던 당시 사진들을 재분류하고, 미공개 사진을 연대에 맞춰 편집하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의 현장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특히 일제나 서구에 의해 찍힌 사진이 많은 이 시기의 사진들 중에서 제국주의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우리의 관점에서 사회상과 생활상, 저항운동 등으로 사진을 분류해 시대의 총체적인 진실에 다가서고 있다.  

시대성이 살아있는 기록이라는 아카이브북의 출판 기준에서 사진가들이 단일 주제로 기록해온 사진작업을 전집이나 선집의 형태로 출간하는 것도 아카이브북의 한 축을 이룬다. 60~70년대 산업화의 여정에서 꿈꿨던 희망과 발전사를 한국 광고사진계의 대부 김한용의 광고사진과 인물사진으로 살펴보는 ‘꿈의 공장’, 서민들의 생활과 소통의 공간으로서 평생 골목길 사진만을 찍어온 고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전집’, 인정 넘치는 사람냄새를 좇아 전국 팔도 83곳의 오일장 사진 430여점을 실은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 군상을 평생 촬영해온 고 최민식의 ‘휴먼 선집’ 마지막으로 정미소, 이발소, 이장, 근대화상회 등 농촌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해온 김지연의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정미소와 시골장터, 골목 풍경 등은 이제는 기억하는 이들마저 줄어들어 책으로나마 지난 한 시대를 증명한다.

 

 



연구자들에 의해 재생산

2만9천원의 착한 가격 10권째 유지

이처럼 눈빛아카이브는 기억의 가장 강력한 매체인 사진을 모으고 분류해 지난 역사를 복원하고, 사라져가는 대상을 기억한다. 이규상 대표는 “기록의 매체인 사진은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매체이다. 오늘은 어제가 집적되어서 나오듯 과거 역사의 집적인 사진 아카이브는 우리의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까지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사진매체는 허상이 아니며, 생산적인 매체로서 기능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사진이 모여 발휘하는 눈빛아카이브의 힘은 역사사회학계의 반응에서 증명된다. 한국전쟁이나 일제강점기를 다룬 아카이브북은 이미 몇차례 논문과 학술지에 인용되었으며, 학계의 자료요청이나 출간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새로운 아카이브북이 나올 때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과 외국인들의 관심도 꾸준하다. 이 결과 ‘골목안 풍경 전집’이 이미 4쇄를 인쇄했고, 대부분이 초판을 넘겼다. 이처럼 관련 학계의 연구자료로서 아카이브북의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고, 더 넓게는 널리 소장되어 후대의 참고자료로 쓰이는 것이 눈빛아카이브의 발간목적이기도 하다. 10권이 넘게 출판되는 동안 2만9천원의 가격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800쪽에 가까운 두툼한 볼륨이지만 웬만한 사진집의 절반에 불과한 가격이다. 어떤 경우는 제작비에도 못 미치지만 누구나 부담없이 집어들 수 있도록 최소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판문점, 북한, 도시빈민 다룬

11~13권째 아카이브북 곧 발간

지금까지 개화기에서 한국전쟁까지를 정리한 눈빛아카이브는 한국전쟁 이후 70년대 도시 빈민들의 생활상과 북한, 분단 등 현대사에 가까운 시기를 다음 시리즈로 준비하는 중이다. 오는 7월에 출간되는 판문점을 다룬 11번째 눈빛아키이브에 이어 ‘노무라 컬렉션’과 ‘신동삼 컬렉션’이 12, 13번째 아카이브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곧 출간될 ‘판문점-JSA와 DMZ’(가제)는 공동경비구역(JSA)과 비무장지대(DMZ)가 있는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판문점 사진을 중심으로 분단 60년사를 사진으로 정리하는 시도이다. 책은 1951년부터 현재까지 판문점과 남북이 대치한 휴전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남과 북 어느 한쪽의 시선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상을 추적해가는 아카이브북은 90년대 몇차례 북한 취재를 다녀온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를 비롯해 한국의 김봉규, 이창성, 이해용, 전대식, 전민조 등 여러 사진가의 사진이 실리고 여기에 눈빛이 국내외에서 컬렉션한 사진으로 구성된다. 눈빛 컬렉션에는 북한이 홍보용으로 촬영한 판문점 사진도 포함된다. 남북의 기자들이 뒤엉켜 지내며 느슨했던 판문점의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회담이 열리고 송환이 이뤄지고 격한 대립이 오가는 사이에 남북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비무장지대는 적막하고 기묘한 숲으로 변해간다. 특히 구와바라 시세이가 개성에서 촬영한 남측이 쌓은 콘크리트벽은 분단으로 인한 소모적인 갈등의 시간을 상징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노무라 컬렉션’은 온 나라가 산업화를 부르짖던 19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도시 빈민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아카이브다. 당시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렸던 노무라 모토유키(81) 목사는 빈민 구제활동을 벌이며 방대한 사진기록도 남겼다. 당시 20만명에 달하던 청계천 주변 빈민들과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방치되고 혹사당하는 모습은 우리사회가 애써 외면해온 과거의 기억 중 하나일지 모른다. 책은 눈감아선 안되는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통해 경제발전의 구호에 가려졌던 착취와 빈곤을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접근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북한의 첫 국비유학생으로 뽑혀 동독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던 신동삼(83)은 정전 이후 동독 기술자들로 구성된 재건단의 통역을 맡아 고향 함흥을 다시 찾았다. 약 1년간 함흥에 머물며 그가 기록한 사진은 분단이 고착되기 이전의 남북의 민족 정체성이 가장 유사했던 시기의 사진기록으로서 희귀한 가치를 지닌다. ‘신동만 컬렉션’ 속 북한은 남한과 별다른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열려 흥정이 오가고, 힘든 노동의 중간중간에 춤추고 노래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와 풍류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귀중하면서 의미 있는 기록인 셈이다.   

이처럼 눈빛아카이브는 사진으로 지난 역사를 복원하고 공백을 메우고 있다. 방대한 양의 사진을 수집하고 가치를 매겨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지난한 과정은 후대를 위해 기록을 남기려는 무수한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사재를 털어 사진을 사들이고, 아무런 사심 없이 기록물을 내놓거나 외국의 기록물보관소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찾아나서는 이들이다. 이들과 눈빛아카이브 사이에는 역사를 올바르게 규명하려는 소명의식과 함께 사진이 역사적 진실을 말한다는 믿음이 서로 통한다.



노무라 컬렉션, 서울 하천변의 도시빈민촌, 1975


글 이종화

자료제공 :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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