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에서 극지로 간 신특수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3-07-09        조회수:7023

 

카메라 속


미지의 땅이 희망의 대륙으로



남극 빙산


 


1912년 1월18일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한 영국의 로버트 스코트 대위는 그의 탐험대가 도착하기 몇일 전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다녀간 흔적을 발견하고 다시 귀환 길에 올랐다. 귀환 길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악천후. 일행은 차례로 죽거나 실종됐고 스코트도 식량을 묻어둔 곳을 불과 17킬로미터 남겨두고 목숨을 잃었다. 그 해 11월 탐험대원의 동사체와 함께 발견된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내일이 마지막 희망이다. 연료는 떨어졌고 식량도 한 두 조각밖에 없다. 종말이 틀림없다. 자연사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여건이 되든 말든 내일 저장소를 향해 떠났다가 길에서 죽을 것이다.’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지구상에서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극지는 스코트 대위와 같은 탐험가들에겐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땅이면서, 나머지 사람들에겐 신비와 불안을 동시에 품게 한 대륙이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서 케이를 구하기 위해 여왕이 머무는 궁전으로 향하는 게르다는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인간 상상을 뛰어넘는 극한의 환경을 만나면 신비감은 온데간데없이 두려움만 남게 된다. 남극과 북극이 베일에 가려있던 시대에 이곳을 묘사한 많은 문학작품이 그랬듯 그곳은 인간의 땅이 아닌 신과 자연의 땅이었다.
시간이 흘러 가려져있던 베일이 걷히고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는 극지는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코트 대위의 전진을 가로막았던 추위와 눈보라 그리고 게르다가 느꼈을 위축감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땅이다.
항상 혹한이 불어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남극과 북극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우리가 아는 극지는 황제 펭귄이 뒤뚱뒤뚱 하얀 눈 위를 걸어 다니고, 북극곰이 먹이사냥을 위해 유빙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습이다. TV를 통해 간혹 접하는 세종기지나 다산기지 연구원들의 모습만 떠올릴 뿐 아직도 남극과 북극은 미지의 땅으로 머물러 있다. 여기에 극지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면서 환경파괴의 바로미터로 자주 언급되곤 하지만 그곳 자연이 만드는 빛과 아름다움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북극 빙원



북극 흑야


 


90년 초반부터 10여 차례 남북극권 찾아 촬영



예고 없이 불어오는 눈보라인 블리자드는 초대형 태풍에 버금가는 초속 20미터에 이르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이때면 사람의 외출은 엄두도 못 낸다. 힘겹게 지나온 발자국을 순식간에 눈이 메워버려 길을 잃기 일쑤며,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과 연결된다.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블리자드의 위협과 살을 에는 추위의 땅에서 사진가 신특수(50세)는 몇 시간째 한자리에서 카메라 셔터에 손을 올리고 40~50미터 높이의 유빙을 노려보고 있다. 빙하에 부딪히는 광선이 가장 아름다운 색을 내는 순간을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극은 저기압의 발생지로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맑았다가도 금방 흐려지고, 다시 맑아져 좋은 촬영포인트를 발견하면 날이 좋아질 때까지 몇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
신특수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산 사진을 찍어왔다. 겨울산을 타면서 웬만한 추위에 단련된 몸이라 추위는 그다지 그에게 제약이 되지 못한다. 지리산과 설악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겨울에도 몇 차례 종주한 그에게 극지의 여름은 그나마 견딜 만 하지만 겨울 추위는 아직도 버거운 상대다. 무한정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으~ 춥다!’뿐이라며 단순,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영하의 날씨에 석양을 찍기 위해 3~4시간을 기다리는 등 사진은 기다림이라는 철칙이 이곳 남극과 북극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신특수는 일반 사진가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남극과 북극권을 지금까지 10여 차례 오가며 그곳의 풍경과 동물 그리고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한국에서 산 사진가로 이력이 굵은 그가 극지로 눈을 돌린 때는 90년대 초반부터다. 북극권에 속하는 쿠릴반도를 처음 카메라에 담은 이후로 극지의 자연이 만드는 웅장한 풍경에 사로잡혔다. 지리산 천왕봉을 찍기 위해 건너편 산을 몇 번씩이고 올라, 기어이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담았을 때의 성취감을 그곳에서도 똑같이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극지를 찾게 된 계기는 2002년 30년 동안의 산 사진을 결산한 ‘한국의 100대 명산’ 사진집을 낸 이후부터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그에게 남극에 있는 세종기지를 촬영하는 제안이 들어왔다. 2002년 세워진 북극의 다산기지에 비해 남극 세종기지는 훨씬 전인 1988년에 만들어졌지만 그동안 이곳을 알리는 변변한 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성사된 첫 남극행은 서울을 출발해 꼬박 일주일 만에 세종기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3~4일을 몸살로 앓아누워야 했다. 서울에서 미국 LA로, LA에서 페루의 수도 리마로 그리고 이곳에서 칠레의 산디에고로 이동해 다시 남미 최남단에 있는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한 후 불규칙하게 운행되는 칠레나 우르과이의 군용수송기를 얻어 타야지 킹조지아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다시 세종기지에서 마중 나온 고무보트인 일명 조디악을 타고 기지로 들어가는 여정이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이다. 장시간 비행에 벗고 놓은 신발에 부은 발이 들어가지 않는 등 녹초가 된 몸으로 도착한 남극은 원초적인 깨끗함 그 자체였다. 당시의 감동을 그는 “눈을 못 뜰 정도로 눈부신 눈과 빙하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빗대어 말했다. 처음 보는 거대한 빙하와 그 위를 노니는 펭귄이 우선 눈에 들어왔고, 수만년 동안에 걸쳐 영하의 차가움으로 보전된 자연은 티끌 하나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청명함으로 가슴을 울렸다.
여기에 반해 세종기지와 다산기지를 그뒤 두 차례 더 찾았고, 최근에는 지난해 말 시인과 화가 등이 포함된 ‘남극체험단’으로 세종기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촬영한 극지사진 중 110여점이 오는 7월20일까지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극지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전시는 50년 주기로 돌아오는 ‘국제 극지의 해’의 4회째 행사의 하나로 마련돼 더욱 의미를 갖는다.
 
광선 따라 변하는 눈과 빙하, 경이로운 생태계



“빙산의 색은 시시각각 변한다. 옥색이란 느낌이 들다가도 푸른 혹은 흰색 그리고 붉은색으로 바뀐다. 그 확연한 색보다 색과 색 사이의 간격에 매료되었다. 그러는 사이 눈보라와 맑은 날의 간격과 빙하와 대륙의 간격 더 나아가 자연과 나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극지의 광선은 다른 곳과는 다르다. 보통 머리 위로 해가 움직이는 지구상의 여느 곳과 달리 이곳은 비스듬히 옆으로 해가 떴다가 지고, 어떤 때는 해가 진 장소에서 다시 뜨기도 한다. 극점에 가까울수록 여름에는 24시간 해가 지지 않거나, 또 겨울에는 반대로 해가 뜨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   
신특수는 이러한 현상이 만드는 극지의 빛깔에 우선 주목했다. 그러는 사이 사진가는 자연이 만드는 빛과 색 그리고 감정과 하나가 되어간다.
“모든 사물의 그림자는 검은색이지만 온통 흰색인 눈과 빙하가 만드는 극지의 그림자는 청색이다. 청색은 찬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극지를 대표하는 색이다.”
그래서 신특수의 사진에는 유독 청색이 많이 보이고, 밤하늘이나 그림자도 완전한 검은색이 없다. 또한 청명한 빛을 받아 선명한 원색으로 발하는 청색 아니면 흰색뿐인 그곳은 지극히 색이 단순한 곳이다. 이러한 색의 단순함은 사진 찍기를 곤란하게 만들지만 노련한 사진가에게는 인류가 잊고 있는 원초적인 순수함을 표현하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남극과 북극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신특수는 극지의 풍경과 함께 오랜 세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생물에게도 눈을 돌렸다. 생물들 제각각은 혹독한 환경에서 적응하며 사는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는 한편 감동적인 생태계를 보여준다.



남극 극제비갈매기



남극 젠투펭귄 가족



그의 카메라에 잡힌 극제비갈매기는 지구상의 새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북극의 빙하에서 남극의 얼음 바다까지 무려 1만2천 킬로미터를 날아가 해마다 왕복 2만4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새다. 무게 100그램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극제비갈매기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먼 이동거리를 통해 극지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펭귄은 뒤뚱거리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만 극지에서는 유별난 자식사랑으로 이름이 나있다. 암수가 번갈아가며 한 마리가 먹이를 구하러 가면 한 마리는 남아 둥지를 지키는 등 새끼 곁을 절대 떠나는 일이 없다. 얼음 천지인 극지에서 어디서 구했는지 돌로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극진히 지키는 모습은 웬만한 인간도 못 따라할 정도다. 신특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펭귄 가족은 모성애로 가득찬 시선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식물에게는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대부분이 연중 얼음으로 덮여있는 남극은 여름이면 해안가를 중심으로 얼음이 녹아 얼마의 땅이 드러난다. 종자로 번식하는 나무는 자랄 수 없지만 포자로 번식하는 지의류가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주로 바위에 번식하는 우스네아는 8년 동안 0.5mm가 자라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오는 지의류다. 몇백년을 자라도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우스네아를 만나면 남극의 사람들은 밟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해서 지나간다.   



하늘에서 본 북극권


 


자연 앞 겸손과 배려는 사진가의 생존덕목



“느리다. 인간과 친하지 않는 극지의 모든 것들은 느리다. 그것들은 시간과 다투지 않는 법을 익혀 버렸다. 열반에 든 경지가 그렇지 않을까 싶게 시간과 존재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고뇌를 무력하게 만든다. 마치 인간 진화의 끝이 단세포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수억 년의 과거를 현재에 재현한 곳이 극지다.”
극지의 물은 아름답다. 빙하와 만년설은 눈을 못 뜰 정도다. 단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성급하게 굴지 않는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수많은 생태계를 보듬어온 남극의 바다는 시시각각 인간의 목숨을 노린다. 빙하가 크레바스를 만들면 눈은 그 위를 덮었다. 극지에 도전한 건강한 사내들이 그 밑으로 사라졌고, 동료들은 무능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블리자드와 함께 옷깃으로 들어온 눈은 서서히 체온을 앗아간다.   
신특수의 사진은 느리면서 한발 한발 겸손하게 다가서 찍은 것들이다. 겸손과 배려라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미덕이 이곳 자연 앞에선 생존하기 위한 필수덕목이 된다.
“남극에서는 인간의 일정을 위해 자연을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자연 앞에서 인내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위해 장비를 조작한다. 눈과 바람, 추위와는 끼니를 때우는 것만큼 몸에 배어야 하며, 키 작은 지의류와도 눈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은 노련한 대원과 초보 참관단 모두에게 평등하다. 물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 바다로 나갈 때는 누구나 방수복을 입는다.”
그의 사진은 자연 앞에서 구도자가 된 듯 마음을 비우고 촬영한 것들로, 허투로 보고 지나칠 사진 한 장이 없다.     
일년 내내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의 헌신적인 탐사활동도 여러 컷 전시된다. 차가운 물속에서 해양생물을 조사하고 설상차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연구원들은 카메라로 자연을 탐사하는 사진가와도 닮은 운명이라고 신특수는 말한다.
“자연 앞에서 과학이 하는 일과 예술이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같다. 자연을 탐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과물의 형식만 다를 뿐이다. 단순히 과학만 연구하는 곳이 아닌 것이다.”


낯선 극지와 인간을 연결하는 사진작업


 



신특수



신특수의 사진은 인간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과 진행정도를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는 곳이 극지다. 극지의 빙하가 지속적으로 녹는다면, 21세기 말에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최대 6.4도 상승하고, 해수면은 평균 59센티미터 높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방글라데시와 네덜란드 등 저지대 국가들은 영토의 상당 부분이 바다에 잠식된다. 특히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심각한 물부족 사태를 겪게 되고 1억명 이상의 환경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위태로운 인류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희망이 바로 극지에 있다. 극지라면 단순히 추운 곳으로만 생각하고 관심이나 정보가 많지 않은 것이 걱정이라고 신특수는 말한다. 인류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희망의 대륙인 극지와 일반인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그의 사진작업이 갖는 또다른 역할이다.
그는 극지의 현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에 비해 아직은 자생력을 갖춰 희망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필요한 건 한 때의 떠들썩한 소란이 아니라 꾸준한 관심이라는 사실도 덧붙인다. 아직까지 살아 숨쉬는 극지의 생태와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공감대를 사진을 통해 만드는 것이 앞으로 그의 계획이다. 조만간 킹조지아섬에 있던 우리나라 남극기지가 남극대륙에도 생기고 쇄빙선이 도입되면 극지는 우리에게 훨씬 더 가까운 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직 못 보여준 남극의 겨울과 북극의 여름을 촬영해 여전히 낯선 극지와 우리를 연결하는 그의 사진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글>이종화

자료제공 :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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