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서 선비로 이응종
등록자:        등록일:2010-01-04        조회수:6900

치유하는 사과에서


기록하는 선비로, 이응종




“개인마다 인식과 기준의 차이야 있겠죠. 전 다만 작가로서 진정성을 갖고 한분 한분을 찾아내 기록할 뿐입니다. 하다보니 의무감 같은 게 생겼고, 최종적으로 아카이브를 만드는 목표가 있어요.”


전국 구석구석을 돌며 선비를 찾아 기록 중인 사진가 이응종(44)은 선비가 특정한 계층이나 가문 출신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닌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인간형을 가리키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선비를 기록하는 사진작업에선 작가의 진정성과 공이 더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어디에 누가 계시다면 무조건 찾아갑니다. 내치시는 분은 없거든요. 그리고 작업을 말씀드려요. 안동이나 합천 이런 곳은 일부러 뺐어요. 행세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진짜를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도포만 입었다고 다 선비는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사시는 지역의 평가가 정확해요. 인간문화재 10분 정도 모셔야 저 분 한명 따라온다는 분들이 있어요. 바로 이 분들이 진짜 선비죠.”


인격 수양과 학문 수련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형인 선비는 이미 화석화된 지 오래된 용어다. 게다가 세상에 드러나기를 꺼려 초야에 묻혀 사는 이유로 이들을 기록하는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가의 마음은 급하다. 이들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이다. 


이응종은 현대의 사회시스템 아래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부정적인 인식마저 짙은 선비 작업을 통해 우리 내면의 부족한 삶의 태도와 정신을 돌아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선비보다는 선비정신이 그의 관심사다. 그리고 선비정신은 여전히 우리 삶을 규정짓는 틀로서 기능하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현대인의 방식과 태도에서 우리는 자주 유학의 영향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진가에겐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그리고 부정보다는 긍정을, 외면보다는 내면을 볼 줄 아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끈기도 빼놓을 수 없다.




궁극의 가치 추구하는 현실의 선비 기록




이응종은 이전 작업이자 평생의 테마인 ‘사과’ 작업을 지난 6년간 해왔다. 그는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10년간은 신문사 사진기자로 그리고 그뒤 지금까지는 전업작가로 살아오고 있다. 사과 작업은 개인작업의 열망과 현실적인 조건 사이에서 방황하던 시절에 스스로를 치유시켜주었고, 여기서 전업작가의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기자 3년차 때 포트폴리오를 들고 일면식도 없던 사진가 김중만을 찾아간 일화며 기자 시절 내내 개인작업을 놓지 않은데서 알 수 있듯 남모를 사진의 열병을 앓으며 차츰차츰 사진작업을 시작해 부지런히 달려 왔다. 지금은 사과 작업을 일단락하고 선비 작업을 새로 시작했고, 또 다른 버전의 사과 작업도 구상 중이다.



사과에서 선비 작업으로, 대상과 작업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 사과는 영원한 테마다. 아무런 사심이나 가식 없어 내 속을 내보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며 시간이다. 앞으로 더 작업할 계획이며 영원한 숙제다. 저장고에 넣어놓고 하나씩 꺼내 야금야금 먹는 것처럼. 다음번엔 팔리는 사과 그리고 현혹시키는 사과 작업을 하고 싶다. 사과농장에 가서 만원만 주면 한 박스를 준다. 요즘은 저장도 잘 돼 족히 1년은 찍을 양이 된다. 평생 혼자서 안 지치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아이템이며, 난 이걸 찾은 거다. 반면 선비는 몇 해 전부터 전통과 관련된 인문서를 보면서 생각한 거다. 요즘은 한국사나 동양사 책을 보면 역사나 전통을 다루는 방식에서 많이 편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읽기 쉽고 재밌어졌다. 이런 책을 보면 모두 죽은 사람들 이야기지 산 사람 이야기는 없더라. 살아계신 분들 중에 조광조나 조식 선생처럼 우리 정신의 치열함으로 끝장을 보신 분을 찾아 기록하고 싶었다.




6년간 해온 사과 작업은 평생의 테마




팔리는 사과 작업? 사과로 현혹시키겠다는 말의 의미는? ▷ 사과 작업으로 두 번 전시했는데 이 전시가 인연이 되어 한 단체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서양화가인 김만근 선생이랑 같이 했다. 이 분 말씀이 이렇다. “작품을 팔려면 생생하게 찍었어야지, 썩은 사과라서 좀 아쉽네!” 보여주려는 미학에는 공감하고 신선하지만 울적하다, 선뜻 집에 걸어두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이 말에 충격 먹었다. 그리고 전업작가의 자세에 관해 배웠다. 팔려서 누군가의 집에 작품이 걸려야 전업작가다. 시장의 상황은 차치하고 먼저 치열해야 하는 거다.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분들의 작품을 보면 예술성 외에 무언가가 더 있다. 개인적으로 좋은 사진은 아프지만 또 보고 싶은 사진이다. 내 사과 사진은 누군가를 아프게만 했지 마음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 안된 거다. 정말 슬프지만 자꾸자꾸 돌아보게 하고 다시 읽혀지는 슬픔 말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을 텐데 여기까지는 못 갔다.


그럼, 사과를 찍으면서 작가만 치유를 얻은 것인가? ▷ 누구에게나 절박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 술이나 연애가 될 수 있고, 나에겐 사과 찍는 게 그것이었다. 삼십대 초중반을 지나며 사춘기 못지않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사진기자 일이 나를 보여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작업에 관한 열망이 점차 커갔고 나 자신에 대한 욕심도 많다보니 뜻대로 안되는 것에 숨 쉴 수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사과 작업은 단순하다. 사과 하나만 있으면 복잡할 것도,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함께 있으면서 찍는 과정도 편했고 마음도 맑아졌다. 강의하는 학생들에게도 얘기한다. 사진 찍는 행위가 치유의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굳이 무언가 얻거나 보려고 하지 말고 터벅터벅 길을 걷다보면 내 발길에 혹은 내 눈에 띄는 무엇을 통해 마음을 덜고 편안함을 얻는다. 사진이란 것도 고민을 털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 




확장된 선비 개념, 현실의 존재로 표현




선비 이야기로 돌아와, 작업에서 어려웠던 점은? ▷ 다들 고령이시다보니 당장 내일을 기약 못 한다. 약속을 잡아놓고 돌아가신 분이 있고, 작년에 촬영한 김철희 선생은 촬영 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누가 선비인가 하는 점이다. 검증이 쉽지 않다. 몇 분 어르신께 여쭈어보면 일절 얘기를 안 하신다. 남 얘기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다는 거다. 처음엔 개인적으로 순수 한학을 공부하며, 가통을 이어오신 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훈장으로 계시는 박래호 선생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 분 말씀이 선비란 특정한 계급이나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겸양을 갖추고 자신의 일에 최선의 가치를 두는 일하는 사람 즉, 누구나 선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확장된 해석이다. 


 


봉화선비 권훈조 / 송석헌이란 8대조 권이번 선생께서 그의 아들 권명신을 위해 세운 집이다. 이 집은 상류층 사람들이 사는 집과 같은 스타일이며, 약간 경사지고 사각진 땅에 자리잡았으며, 건물은 영풍루와 선암재, 곡물창고, 정문, 사당이 그 위에 지어졌다. 그가 이 집에 태어난 이래 81년을 갓과 도포를 입어왔다. 한때 이 집에는 40명 가까이되는 식솔들이 살았었다. 현재는 300년도 더된 이 집을 선생과 마당의 작은 개 그리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고양이가 지키고 있다.



선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책이다."
어떤 책을 일생동안 옆에 두고 지내셨는지요?
"소학이지. 사람의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 5권의 소학을 읽는 건 필수라 할 수 있지."
선생께서는 방에 들어가시더니 잠시 후 한묶음의 책을 가지고 나오셨다.
"내 9대조(1659-1738)께서 손수 쓰고 엮으신 책이야.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었고 총 4권이지. 어릴때 내 조부께서 가르쳐주셨는데 그뒤로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지."
선비의 수기(修己)는 소학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1187년 송나라시대 주자가 쓰셨으며, 주된 내용은 사람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기 위한 근본적인 규칙과 행동규범을 담고 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해 열 분 정도를 촬영했다.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 ▷ 나 역시 한참 알아가는 중이다. 어떤 분이 하신 말씀 중에 외출을 할 때 꼭 도포를 챙겨 입는 이유가 아직 정신과 전통이 건재하며 미약하나마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이유도 있다고 하셨다. 분명한 건 우리 내면에도 이런 정신과 전통이 삶을 규정짓는 틀로 전해지고 있으며 아무리 외면하고 인정 않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라도 광주에 30년 된 한학 공부모임이 있다. 한번 들여다봤는데 다들 칠순, 팔순이 된 분들이 모여 한시를 공부하고 있었다. 실제 삶과는 무관할 순 있어도 스스로 추구하는 삶의 최고가치를 방어하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하면서 당장 필요한 것 외에는 너무 많은 것을 외면한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순수 한학만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어렵게 산다. 사회 시스템과 맞지 않다. 이윤을 남기는 행위를 꺼려해 장사는 안 하고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


선비정신이란 메시지를 보여주는 촬영방식은? 그리고 계획은? ▷ 다들 과거 속에 묻어두고 싶지 않았다. 집에 사람을 가둬 옛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가 않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분이란 점과 과거와 현재를 나누고 싶어 배경으로 천을 사용했다. 그리고 적어도 스무 분은 촬영해야 않을까 싶다. 그때 모두 모아서 전시를 다시 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최소 3년은 촬영해야 할 듯하다. / 글 이종화기자<월간사진 2009년 4월호>



노강 박래호 /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훈장인 노강 박래호 동양학 연구원장



송담 이백순 / 전남 광주의 송담 이백순 선생


 



이응종은 중앙대 사진학과와 상명대 예술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사진기자를 지냈다. 2006년과 2007년에 <사과>, <네 번째 사과>전을 가졌고, 그 외 <부자농부>, 개인전과 서양화가 김만근과 함께 백송화랑 초대전 <마음 흐르는 곳>전 등을 열었다. 지난 4월 인사동 아트비트갤러리에서 선비 작업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자료제공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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